쿠라키 마이 내한공연을 다녀와서. ~무적의 추억 떡밥~

 



 대략 10년 전에 일본 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무선 계열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일본 음악계 전체가 장르와 회사, 분파 등이 얽히고 섥혀 절묘한 균형을 이룬 몇가지 큰 갈래로 나뉘던 시절 이었다. 일단 소위 그 계열 이라는것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넘어가자. 우선 방송 활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타이업으로 수익을 내던 빙 계열이 있다. 그리고 엑스 재팬, 라르크 앙 시엘, 글레이 등이 국내에서도 컬트적 인기를 구가하던 비쥬얼 락 계열이 있으며 지금도 일본 음반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AVEX 와 그 필두에서 아티스트들의 행보를 좌지우지 하던 프로듀서 TK 와 그가 키운 가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TK 계열, 마지막으로 쟈니즈와 모닝구 무스메로 대표되던 아이돌 계열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중 국내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것은 가장 처음에 언급한 빙 계열 이었다. 극대화된 접근성과 그리 왜색이 느껴지지 않는 음악적 색채가 소위 '빙 계열'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면 각종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등의 주제가로 광범위하게 깔린 그들의 음악적 저변은 굳이 일본 음악에 손을 뻗치려 한게 아니었던 사람까지도 매료시키던 그들의 가장 큰 무기였다. 그러나 아무리 빙 계열이 국내에서 날렸다 한듯 찻 잔속의 태풍 신세. 당시만해도 일본 음반은 국내에 정식 수입이 될수 없었기에 다른 모든 일본 문화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폐쇄적인 듣는 사람만 소비하는 그러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90년대말, 2000년대 초에 전국에 깔리기 시작한 초고속 통신망과 딱 그때 쯤 풀려 버렸던 일본 음반에 대한 수입 금지령이 이러한 폐쇄적 특징을 극복 하기 위한 돌파구가 되었다고 볼수도 있지만, 빙 계열은 그 혜택을 얻지 못했다. 당시 이미 일본 음악계는 지각 변동이 시작된지 오래라 이러한 '계열들' 을 나뉘던 특징과 경계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타이업은 이미 빙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어 버렸기에, 방송을 최대한 자제하던 그들의 활동 방식이 곧 쇠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한 빙 계열의 한 축으로 GIZA 스튜디오가, GIZA 스튜디오의 간판으로 쿠라키 마이가 존재했다. 내가 그녀의 음악을 처음 들어본것은 이미 그녀가 '제2의 우타다 히카루' 소리를 들으며 화려하게 데뷔한지도 꽤 지난 2001 년 중순. 천리안 일음동에서 왠만한 자료는 다 내려받고 이제 남은게 그녀의 1집 'Delicious Way'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묵직하고 심각한 음악을 상상하고 절대로 듣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곡들을 MP3 에 담고 걷던 등교길, 쓸데없는 상상을 가뿐히 초월해주던 청아한 목소리와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에 깜짝 놀라던 그때가 생각난다. 당시 나는 위쪽에 엄청난 분량을 할애해 설명한 일본 음악 계열에 대한 감을 완전히 잡고 바야흐로 일빠 씹덕의 왕도에 접어들고 있었으며, 질풍노도의 극치를 달리던 정서와 달리 몸은 집과 학교 학원만을 왔다 갔다하며 무언가 속에서 부글 부글 끓고 있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그녀가, 그녀의 'Delicious Way', 'Perfect Crime', 'Fairy Tale' 등이 나한테 줬던 위안은 말로 다 할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한 그녀가 데뷔 10년을 맞이하야 한국에 오신단다. 넙죽 엎드려 맞이할 수 밖에.

 내 입장이 이러하다보니 공연전 상상한 관객의 면면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슬슬 그녀를 추억으로 기억하기 시작할 나이의 청년들을 보게되리라 생각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완전한 착각 이었다. 아무리 많이 봐줘도 고등학생이 안되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디에 현수막을 다느니, 응원은 어떻게 해야 하느니를 의논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고 실제로 부모님과 함께온 친구들도 꽤 되어 보였다. 여담이지만 빙 계열 내에서도 그녀가 소속되어 있던 GIZA 스튜디오는 아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명탐정 코난' 의 주제가는 90% 이상 이들이 불러주는게 일종의 공식화가 되어있었고 그녀는 그 중에서도 12곡을 불러내는 대 업적을 이루었다. 오늘 목격한 세대를 초월한 인기에 명탐정 코난의 위력또한 한 몫 했음이 분명 하리라.

 본 공연은 싱글 'P.S♡MY SUNSHINE' 의 커플링 곡인 'Baby I like' 로 문을 열었다. 10주년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공연 전체에 충만해서 'Delicious Way' 나 'Perfect Crime' 등에 수록된 초기 곡들이 굉장한 비중을 차지했으며 2000 년대에 발표한 신곡들과도 적절한 배합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데뷔 10년차의 저력이 느껴지는 러닝 타임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최근 내한 공연의 트렌드는 1시간 30 분이 채 못되는 본공연에 앙코르전 대기시간이 10분 가량, 그리고 2곡에서 3곡으로 앙코르를 해 1시간 30분이 조금 넘어가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의 지연도 없이 7 시 정각에 시작된 공연을 10시가 넘어서야 끝을 보았다. 3시간에 달하는 공연, 단 한순간도 소홀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앙코르, 'Chance for You' 에서 미리 나눠받은 노란 손수건을 흔들었다. AX 홀을 가득 메운 사람 모두가 그러했다. 한국어로 개사한 후렴구를 부르고 고개를 숙인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잘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감동적인 무언가를 살면서 보았을수도 있을것도 같은데 당장 생각 나지가 않는다. 그 정도로 멋드러진 광경이었고, 이 맛에 라이브 다님을 다시한번 느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마이크를 뗀 상태로 목청 껏 내지른 '감사합니다!' 커튼 콜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무대를 떠났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감상문을 어찌 써야 할까를 생각했고, 즉시 '추억' 이라는 키워드를 떠 올렸다. 그 무섭다는 DC 코갤도 추억 떡밥에는 낚여준다. 오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을 찾은 쿠라키 마이의 내한 공연은 순도 100% 짜리 추억 선물 셋트나 다름 없었다. 뇌에 꽂혀버린 낚시 바늘을 느끼며 10 여 년전 내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그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볼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by 姜氏世家小家主姜世振 | 2009/11/15 01:35 | 萬流書庫 (萬物)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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